한림연예 예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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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11 16:00
세계일보12월11일자기사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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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1일자 세계일보 기사

[이사람의 삶]이현만 한림고 교장
1983년 학력인정학교 첫 선정… 졸업생 2만명 배출
내년 3월엔 연예예술고 개교… 새로운 ‘韓流’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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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만 교장은 “국가가 한림학원을 교육기관으로 당당하게 인정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서울 송파구 장지동 68번지 2600여평의 야트막한 평지에 위치한 한림 초·중·실업고등학교는 한국 사회교육의 ‘메카’로 불린다. 정규교육과정에서 소외된 청소년과 주부의 배움터인 이곳은 그동안 2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1983년에는 국내 최초로 학력인정학교로 선정된 국내 사회교육의 ‘산증인’이다. 지난달 25일 찾은 이곳은 내년 3월 국내 최초의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신입생 모집과 교사확충 공사 등으로 분주했다. 예술고 개교 준비로 바쁜 와중에 구두닦이부터 출발해 숱한 역경을 딛고 소외계층 교육에 50년을 헌신해온 이 학교 설립자 이현만(71) 교장을 만났다. 그의 말 한마디는 한국 교육의 변천사였고, 그의 삶 자체는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그의 과거는 파란만장했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넝마주이, 아이스크림 장사, 신문사 지국장 등 이력서를 쓰려면 종이가 모자랄 정도다. 그는 인터뷰 내내 ‘소외계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혹시 마음의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다. 최근 사회교육의 트렌드도 바뀌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60년대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지금은 가난보다는 ‘적성’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내년 3월 개교하는 연예예술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과거를 거슬러 가면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이 교장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동네 선배 옷을 빌려 입고 갈 정도로 가난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공부를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14살 때 상경, 구두닦이와 세탁소, 아이스크림 장사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우연히 고향 선배의 도움으로 남산직업학교에 들어간 후 월등한 성적으로 중학교 과정을 뛰어넘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현만 교장이 1971년 8월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서 한림학원을 열 당시 첫 수업시간을 알렸던 종을 쓰다듬으며 환히 웃고 있다. 그는 “이 종은 한림학원의 역사이자 내 보물 1호”라고 말한다.
    이제원 기자


    대학 2학년이던 1960년 4월 다른 고학생들과 힘을 합쳐 서울의 빈민가였던 홍제동 뒷산에 천막형태의 한림학교를 열었다.

    “당시 2000세대나 되는 무허가 판자촌의 주민대표위원장으로 뽑혀서 단속하는 경찰·시청 직원과 싸우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홍제동 천막학교 부지가 사유지화되면서 철거되자, 동서가 제공해준 장지동 현 부지에서 새로운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 50명으로 중학 과정을 시작할 당시 교사라고는 이 교장과 부인 단 2명.

    “학생들이 벽돌을 함께 나르면서도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운영비는 양계장을 하면서 보탰고, 점차 한림학교가 알려지면서 인근 군부대가 트럭을 지원하고, 여러 사회기관에서 도와주면서 학교가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고입·고졸 검정고시제도에 관한 개선책을 건의해 독학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준 공로로 서울시교육감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의 교육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예 전국연합회장을 맡아 전국의 100여개 무인가학교를 규합해 이 가운데 70개 학교가 정부당국의 인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학력인정학교로 인정받기까지의 노력은 가히 헌신적이었다.

    “2∼3년간 국회나 정당, 문교부, 내무부, 보건사회부, 총리실, 청와대 등을 다니면서 건의사항을 관철해 달라고 호소했다”는 그는 “학력인정 허가소식을 듣고 나오다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쓰러져 한 달간 입원한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내년 3월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의 개교를 준비하는 그는 요즘 정신이 없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은 무리라는 주변의 우려에 대해 그는 단연코 ‘NO’를 외친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남녀노소가 없듯이 가르치는 입장도 마찬가지라는 것.

    오히려 최근 청소년들의 적성에 맞는 특성화되고 차별화된 교육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류열풍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연예예술은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교장은 “연예인을 지망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단순히 놀기 좋아하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라며 “그런 학생들은 자신들의 ‘끼’를 살릴 교육의 터전을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연예예술고등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지원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가 예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해온 한림 주부 중·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했다.

    그는 “예전 우리의 어머니, 누이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형제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면서 “과거에는 아들 한 명이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적었다”고 말했다.

    한림학교는 그것에 집중해 주부나 여성들을 대상으로 ‘무지의 한(恨)’을 풀어보려 애썼다.

    결국 그는 청소년 학력인정 추진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2월 국내 최초의 주부 중·고등학교 과정 학력인정학교 인가를 얻어냈다. 이 교장의 눈물과 열정, 노력이 일궈낸 자랑스러운 성과인 셈이다. 쉬지 않고 달려온 이 교장의 교육 인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서전 ‘에밀의 노래’ 한 대목은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교육을 하면서 나는 인간의 위대한 힘을 느낀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을 일깨우는 이 일에 평생을 바쳐온 것이 더 없이 행복하다.’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